오늘의 강론

사순 제2주간 금 - 인색한 이와 질투심이 많은 이

dudol 0 3,068 2012.03.08 23:54
독서 : 창세 37,3-4.12-13ㄱ.17ㄴ-28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을 찾아가는 요셉) ...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복음 : 마태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예수님께서 ..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질투란 쓸데 없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상대방도 자신도 득이 되지 못하는 열매를 맺게 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까운 이들이 잘 되는 것이 내게도 도움이 되는 것임을 체험할 수 있다면 질투할 이유가 없을 텐데도 이웃이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픈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관대함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나, 흥부 놀부전에서 흥부가 잘 되었을 때 부자인 놀부 형이 배 아파한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에서 팥쥐의 질투 이야기 등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질투심은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 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릴 때 어느 교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마지막 공심판 때에 심판관은 아주 조그마한 공로라도 있다면 그 공로 때문에 지옥에서 그 공로있는 이를 하늘나라로 불러올리고자 하였는데, 공적에 대한 심사 중 지옥에 있던 한 노파는 살아 있을 때에 이웃에게 파 한 뿌리를 나눈 선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공로 때문에 천국으로 초대되게 되었는데 그 때 천국에서 지옥으로 파 한 뿌리를 내려 그 뿌리를 잡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오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노파는 파뿌리를 잡고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지옥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그녀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함께 올라가려 매달리자 파뿌리가 끊어지면 자신이 천국으로 올라갈 수 없을까봐 그를 발로 차 떼어내려 하다가 그만 두 사람 다 지옥으로 다시 떨어졌다고 합니다. 기왕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매달리는 이도 함께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면 자신도 그 사람도 함께 천국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인 판토하 신부님이 중국에 와 선교할 때 지은 책 <칠극>(일조각, 1998)에는 질투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 본문을 보면 여러 가지 질투에 대한 사례들을 들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플라톤은 "나는 질투하는 이들에게 천 개의 귀와 천 개의 눈을 더해 주어, 모든 사람의 덕과 복을 보고 듣게 하여, 그들의 근심이 끝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질투는 인색보다도 더 나쁩니다. 인색한 이들은 [자신은 남에게 어떤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남에게] 주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투하는 이들은 [자신이 남에게] 어떤 복된 것을 전해 주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이 [남에게] 그것을 전해 주는 것 조차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양 어느 나라엔가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질투가 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매우 인색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현명한 왕은 꾀를 내어서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나는 너희들이 바라는 것을 너희들에게 책임지고 모두 들어주겠다. 그런데 먼저 부탁하는 이에게는 하나를 주고, 뒤에 부탁하는 이에게는 배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배로 받고 싶었기 때문에, 각자 사양을 하며 뒤에 부탁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임금이 질투가 심한 사람에게 먼저 부탁하게 하였더니, 이 질투가 심한 사람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서는 "임금님, 저의 눈 하나를 빼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칠극> 102-104쪽 참조)
   복을 두 배로 받게 할 수 없어 차라리 재앙을 두 배로 받도록 하는 마음은 도대체 내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두움을 밝게 비추어주시는 주님께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 주십사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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