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사순 제3주일(나해) -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

dudol 0 3,285 2012.03.10 18:44
제1독서 : 탈출 20,1-12
   그때에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너는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제2독서 : 1코린 1,22-25
   형제 여러분,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 요한 2,13-2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신앙인이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세 분야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제1독서의 말씀에서 산과 십계명이 하느님을 만나는 도구가 되었음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산은 대대로 우리의 곁에서 우리 조상님들을 묻어드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의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을 만나뵈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 이후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엘 샤다이)을 산에서 늘 만나왔습니다. 열가지 계명은 그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통로역할을 하였습니다.
   둘째는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한 이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성전의 역할을 재정립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에서 인간 서로가 하느님을 배제하고 인간끼리만 만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셨습니다. 그 성전 안에는 이스라엘이 모세 때부터 만나온 십계명판이 들어있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로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유다인들은 약속된 메시아를 영광스러운 표징을 통해 만나뵈오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오늘 두번째 독서를 통해 십자가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지름길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겪고있는 삶의 십자가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는 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과년도 묵상 자료)
   46년이나 걸려 지은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오늘 복음 19절). 이 말씀을 통해 돌로 지어진 성전만큼 우리 마음의 성전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고 저들이 성전을 쉽게 허물 수 없듯이 자신들의 고집이나 전통도 쉬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저들은 성전을 허무는 대신 성전 자체이신 예수님을 3일만에 허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을 통해 성전을 짓는 것에 대한 것보다는 성전을 허물듯 우리 안에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전통이나 고집을 허물 용기를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성전을 허물어라." 라는 말씀은 오늘도 새롭게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촉구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에 의하면 성전에 참배하는 19세 이상의 유다인들은 누구나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티나에는 로마, 그리스, 이집트, 티로, 시돈 등의 돈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성전세만은 유다 화폐인 갈릴리 세겔이나 성전 세겔로 내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지에서 몰려 온 순례객들은 돈을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이 때 환전상들의 환차익은 오늘 우리 시대 은행들의 환전 수익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쉬 볼 수 있게 마련입니다.

   당시 성전 순례객들은 또한 감사의 뜻으로 흠없는 제물을 성전에 바쳐야만 했습니다. 소, 양, 비둘기 등이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성전 뜰 안에서 파는 제물만이 흠없는 것이었고, 성전 밖에서 사가지고 온 것들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성전 대사제들과 장사꾼들의 유착 때문에 이러한 엄률이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장사판이 벌어지는 곳은 성전 구내 중 이방인의 뜰로서 유일하게 이방인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실천에 옮겨 볼 두 가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 마음의 성전을 필요하다면 언제든 부술 수 있음에 대해 묵상하고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처럼 우리 몸을 성령의 궁전(1고린 6,19)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전을 정화하신 주님의 행동을 본받아 눈에 보이는 우리 가정의 십자고상이나 성모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이 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성물의 정화가 주모님 사랑의 한 방법일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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