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 - 의로운 요셉

dudol 0 4,220 2012.03.19 11:20
한국 교회의 수호자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 2사무 7,4-5ㄴ.12-14ㄱ.16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리라.

제2독서 : 로마 4,13.16-18.22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복음 : 마태1,16.18-21.24ㄱ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2012년 묵상 자료:
   오늘 복음을 보면 아기 예수님의 이름을 짓도록 명 받은 분은 요셉 성인이셨습니다. 구약성경(창세기)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이나 이사악을 얻었을 때 이름을 짓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으며 이름을 지었습니다. 물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나오미가 이름을 지을 수 밖에 없었겠지만 성경 주석(주석성경 622쪽 주 23 참조)을 보면 이스라엘에서는 일반적으로 아기 이름을 아버지나 어머니가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내용을 볼 때 아기 예수님의 이름을 지으신 요셉의 부성(父性)을 구약으로부터 내려온 가장의 권위로 보게 됩니다. 이는 2011년 송강의 시의 흐름과도 같은 내용이라 묵상하게 됩니다.
   "의로운 요셉" 이란 표현 또한 묵상하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의'(dikaios)와 '의로움'(dikaiosunee) 두 형태로 '의' 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의(just 혹은  righteous)와 의로움(righteousness) 두 형식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 비해 마태오 복음은 '의(로움)' 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의' - 마태오 19회; 마르코 2회; 루카 11회; 요한 3회/ '의로움' - 마태오 6회; 루카 1회; 요한 2회).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요한 세례자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상 설교 중 '참행복' 선언에서도 여덟 가지 행복의 길 중 의로움은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또 다른 한 번은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에서입니다. 주석 성경에서는 "성경의 의로움 또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충실함을 뜻한다. 그래서 요셉의 의로움은 일차적으로 마리아와의 인간 관계에 충실함을으로서, 마리아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셉의 의로움은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인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함, 곧 그분의 뜻에 순종함을 가리킨다."(주석성경, 신약, 42쪽 주 11 참조)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2011년 묵상 자료 :
   송강 정철은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사랴 하늘같은 은덕을 어데 다혀 갚사오리." 라고 읊었습니다. 이 시를 대할 때면 어머님이 보통 나를 낳아주셨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아버님이 날 낳으셨다는 말이 얼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자식의 생명을 낳아주시는 분은 아버님이시고, 어머님께서는 길러주시는 분으로 가르쳐 왔고, 그 뜻을 받들어 효도를 다 하도록 하셨기에 그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어머님 홀로 낳아 키우도록 하시지 않으시고 요셉과 마리아 두 분의 슬하에서 태어나 자라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요셉 성인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성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낳으셨고 어머니 마리아님은 아기 예수님을 기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도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많은 후손들을 낳은 이들로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에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몸에서 나와 그의 뒤를 이을 후손을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실 것이라 하셨고(2사무 7,12 참조),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로마 4,16)이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로마 4,18) 것이라 선포하셨다.

2010년 묵상 : 성 요셉께 드리는 9일기도
   교리신학원 강의를 나갔다가 바오로딸 서원에 들렀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책들을 사려다 보니 서가에 꽂혀 있는 <성 요셉께 드리는 9일 기도>란 책을 보게 되어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듯 구해 갖고 돌아와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성덕 중 침묵으로 내조자의 몫을 다 하신 모습을 금년에는 9일기도를 통해 제일 많이 본받고 싶어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말을 하며 내 속내를 너무 많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상대방에게 나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이게 하여 이제는 좀 자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묵상 : 요셉은 의로운 사람
박석무 선생의 글 <다산기행> 33쪽에는 다산이 강진에 유배가 있는 동안 머물던 방을 사의재(四宜齋)라 한 연유를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습니다.
사의재란?
  - 생각은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엄숙함이 엉기도록 해야 한다.
  -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곧바로 그치도록 해야 한다.
  - 동작은 마땅히 후중하게 해야 하니 후중하지 못하다면 곧바로 더디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때문에 그 방의 이름을 ‘네 가지를 마땅하게 해야 할 방’(四宜之齋)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땅함(宜也者)이라고 하는 것은 의(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니 의로 규제함이라 하겠습니다.
   다산은 의로움의 의미를 사의재란 이름을 지으면서 묵상한 대로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동작에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음에 두었습니다. 요셉 성인께서 어떻게 처신하셨는지 성경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산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못지 않는 멋진 삶을 살아가신 분이셨으리라 믿게 됩니다.

2006년 묵상 : 아들의 출산을 기쁨으로 여기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아들의 잉태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어린이들로부터 시작되는데 우리 스스로가 그런 역사의 시작을 막으려하기 보다는 열어주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셉 성인은 성령을 통해 아기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많은 부모님들이 입양아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령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게 됩니다.

2004년 묵상 : 학교 뒷동산에 있는 산수유 나무에 물이 오르고 진달래 꽃망울들이 물을 가득 먹기 시작합니다. 봄의 소식이 곧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색유리 교수 양단철 선생은 수원교구 오산 성당의 색유리 작업을 하면서 부활을 물오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다가오는 봄이 소리없이 오듯 요셉 성인은 예수님과 배우자에게 새로운 생명이 움트도록 곁에서 소리 없이 도우셨습니다. 그렇게 말없이 이웃의 생명이 꽃피우도록 돕는 삶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2000년 신학교에 머물 때 들은 이찬우 요셉 신부님의 강론 말씀 :
   이 요셉 신부님은 요셉 성인의 영어 이름(JOSEPH)을 분철하여 여섯 가지 단어로 묵상 주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래 그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JOSEPH = Justice(마태 1,19 의로운 분) +
                  Obedience(마태 2,13-14 순명하신 분) +
                  Silence(성서에 요셉은 침묵하신 분이셨다) +
                  Experience(하느님 체험 있으신 분; 혹은 마르 6,3 숙련된 기술을 지니신 분) +
                  Prudence(현명하신 분) +
                  Humility(겸손하신 분) 등
위 여섯 단어의 두문자어(頭文字語, Acronym)를 만들어 묵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1993년 묵상 : 빛 자체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그 빛 때문에 다가간 존재는 자신의 모습이 흡수되어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집니다. 요셉 성인은 빛 자체이신 분의 양부였기에 그 존재의 모습이 빛 안에 흡수되어 잘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1992년 묵상 :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주 우리 이웃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게 됩니다. 요셉 성인이 천사가 일러 준 말씀을 그대로 따랐듯이 우리도 이웃의 뜻에 얼마나 순명을 잘 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꿈의 내용대로 요셉은 그 뜻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할 자리에 나가기 전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천사의 전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우리 주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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