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6월 3일 삼위일체 대축일(나해) - 삼위일체와의 만남의 과정을 돌아 봄

dudol 0 4,761 2012.06.04 10:20
제1독서: 신명기 4,34-34. 39-40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제2독서: 로마 8,14-17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28,16-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2012년 묵상 자료)
   바오로 사도의 삼위일체와의 만남의 과정을 사도행전 9장에서 찾아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울(히브리식 이름)은 다마스쿠스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러 가는 길에 주님을 갑작스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예수님과 첫 만남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바오로는 눈먼이가 되어 앞도 보지 못하고, 굶주린 상태로 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 하나니아스를 만나게 된 후 그는 그로부터 기도와 안수를 받고 비로소 눈을 뜨고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그후 며칠 다마스쿠스의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그는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고, 제자들과 며칠 머물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깨닫고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같은 바오로 사도의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첫 만남은 점차 사도로서 활약해 가면서 더 심화된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게 되어 간 것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 제자들도 바오로의 체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3년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녔고,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으로 피신해 가시던 스승님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라고 제자들에게 물었을 때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3-16 참조) 라고 대답하였지만, 정작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으심, 무덤에 묻히신 이후 다락방에 문을 걸어 잠그고 뜻모를 두려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과의 긴 만남의 결과는 아직도 제자들의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고, 신앙의 눈마저 어두움에 쌓여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마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그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신 후,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도록 해 주셨을 때에 비로소 눈이 열리고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바오로 사도나 베드로 사도의 삼위일체와의 만남의 과정들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신앙에 입문하여 점진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 성사와 성체 성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뵙지만 아직도 깊이 그분을 알아뵙지 못하며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견진 성사 때 성령을 만나 뵈옴으로 비로소 우리는 성부 하느님의 인류 사랑의 참 모습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의 눈과 빗장을 열어주시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 자료 1)
   세례자 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거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던 전례가 차츰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 것은 사도행전이나 바오로 서간들의 내용을 볼 때 베드로 사도나 바오로 사도의 영향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가 전해 주듯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삼위일체의 가장 오랜 정식인 "은총을 내리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길" 인사말로 전하고 있습니다. 

(묵상 자료 2)
   군종신부 시절 짠물교구(인천교구를 타교구 신부들이 그렇게 불렀다) 신부로서 자긍심을 갖기 위해 묵상을 한 것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 의미와 부합되는 듯 싶어 옮겨 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넓은 <바다>와 뙤약볕에 벌거숭이가 되어서야 결정이 이루어지는 <소금> 그리고 소금이 녹아들어 <맛>을 내고 있는 야채나 반찬들(김치나 깎뚜기 등) 이 셋의 관계가 마치 삼위일체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바다 물>은 지구의 2/3를 차지하고 있어 성부 하느님의 편재하심(어느 곳에나 다 계시는 하느님)과 유사하고, 또 우리 인류의 탄생과 연관지어 볼 때 어머니 모태가 양수로 차 있어 태아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창조의 터이기도 합니다.
   <소금>은, 바닷물이 염전이라는 정해진 구역 안에 갇혀 뙤약볕을 쪼이며 며칠을 보내는 희생의 순간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결정(結晶)됩니다. 약용으로도 쓰이고 조리용으로도 쓰이니 소금의 쓰임새는 성경 안에서만도 꽤 여러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바닷물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우리 인류에게 다가 온 소금은 성자 예수님의 구원사를 묵상해 보게도 됩니다.
   <맛>은 소금이 온전히 녹아들어 새로운 맛으로 우리에게 다가옴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소금처럼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더 이상 우리에게 당신 모습으로 현존하지 않으시고 녹아든 모습으로 성령을 통해 살아계십니다. 당신의 모습은 더 이상 2천 년 전처럼 그렇게 가까이서 뵙는 분은 아닐지라도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시며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어 사랑과 친교를 나누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미사와 성사, 시편 기도나 찬미가에서 성삼의 이름으로 기도를 봉헌하게 된 것은 초기 교회 교부들의 글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찬미가>는 이미 2세기 사셨던 유스티노(100~165) 성인의 저서에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의 저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초기교회 공동체는 이미 삼위일체 세례 정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찬미가로 하느님을 찬미하다 보면 <작곡가>, <연주가>, <청중> 이 셋의 관계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깊이 묵상케 해 줌도 아울러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부는 작곡가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빚어 만들어 주셨고, 성자께서는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직접 삶을 통해 깨닫고 느끼며, 듣게 해 주셨고, 성령께서는 작곡가와 연주가의 영적 통교를 통해 음악을 듣는 청중들의 마음에 신비스러운 감흥을 갖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작곡가의 뜻과 연주가의 표현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고, 혼을 뒤흔드는 뜨거운 감동과 공감으로 하느님 찬미와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삼위일체의 상호간 일치와 사랑, 그리고 친교와 은총을 나누심은 우리 인간들의 삶에 여러 가지 교훈을 베풀어 주십니다. 부부들이 혼인 서약을 통해 일생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고서도 평생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오늘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통해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녀 출산 후 부부가 자녀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사랑과 친교의 관계에서 또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구성원 서로 간에 창조의 의지를 공유하고, 그 뜻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 협조하고, 상호간 일치를 이룸에 부족함이 있다면 또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은 1334년 요한 22세 교황(1316~1334)에 의해 성령강림축일 다음 주일로 지정되었고, 그 후 로마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교회의 의무축일이 되었습니다. 비오 10세(1903~1914) 교황은 1911년에 이 축일을 대축일로 승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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