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연중 제16주일(다해) 농민주일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dudol 0 3,787 2016.07.16 20:55

연중 제16주일(다해) - 제헌절

2016.7.17. 소사 성당

 

집에 상주하는 여성 제자들

엘레나 보세티 루카 복음서 묵상 에서 옮긴 글

루카는 예수의 순회 여정에 동행하지는 않았으나, 환영과 환대의 본보기로 제시된 다른 여성 제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녀들은 자기들 집에 주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시중들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던 여자들이었다.

마르타의 집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루카 10,38-42)는 선교의 문맥 안에 자리하고 있다. 루카 복음서 10장은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10,1-12; 일흔두 제자가 돌아와 보고 10,17- 20)하는데, 그 이야기의 시작에서 예수와 그분의 무리가 여정 중에 있음을 보여준다(10,38; 가장 큰 계명 10,23-28;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0,29-37 그리고 마르타와 마리아 방문하심).

-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과 관련이 있다. 마르타는 주님께 멋진 환대를 해드리고 싶어 한다. 그 멋진 환대에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것이 들어있다(10,40). 반면에,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10,39)

우리는 여기서 가장 관용어적인 표현을 보게 된다. 어떤 이의 발치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제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변호하는 성 바오로의 말이 생각난다. 성 바오로는 자기가 라삐가 되려 했다면서 나는 가말리엘의 문하(발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 22,3)고 분명히 말한다. 가말리엘은 바오로 시대에 가장 뛰어난 라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리아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 여자의 자리는 부엌이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남자들만의 몫으로 한정되었던 당시 유다 문화에서 확립된 여자의 역할을 위반하고 있다.

 

마리아의 역할

마르타는 자기 동생의 일탈을 호의적인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것에 놀란다. 그녀는 그분께 어쩐 일이냐고 따지면서 그분이 자기 견해를 받아들여 마리아에게 한 마디 타일러 주시라고 청한다.

마르타는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의 납득할 만한 한계 안으로 자기 동생을 되돌리는데 예수가 도와주기를 청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마리아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으심으로써, 감히 우세한 규범을 어긴 마리아를 역성드신다.

남성 제자와 동등하게 이렇듯 주님의 발치에 앉는다.”는 것은 더 나은 역할, 그녀한테서 빼앗을 수 없는 역할”(10,42)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마르타의 집은 원기 회복의 장소로써만 그 쓰임새를 한정할 수 없다. 주님이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로 인해, 그 집은 복음 선포의 장소이며 하느님 말씀이 들려지는 장소(bet hammidrash)이다. 그 장소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동등하게 성경을 공부하고 해석하는 집이다.

사도 22,3 para tous podas Gamaliel(가말리엘 문하(발치)에서)

루카 10,39 para tous podas tou Iesou(예수님의 발치에)

루카 8,35 게라사인들의 지방의 마귀 들린 어떤 남자(‘군대라고 불리던 이)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이) 그만 겁이 났다. (39)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일을 온 고을에 두루 선포하였다.(데카폴리스의 복음 선포자)
두돌 묵상 아직 교회 건물이 없던 시절 '가정'은 교회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공동체 안에는 마르타의 역할을 하는 이들도, 마리아의 역할을 하는 이들도 함께 있어야만 했다.

 

오늘은 한국 주교회의에서 농민주일로 정한 날이라, 한문으로 ’() 자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는 조개껍질()로 숲()을 일구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김언종, 한자의 뿌리, 225 참조). 새벽 5시에서 7시까지를 십이지간으로 신()시라 하는데 자에 들어 있는 신()자의 의미를 볼 때 조개껍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새벽에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부지런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놓은 글자라 할 수도 있다예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이들은 한낮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찍 들에 나가 일을 해야만 한다.

7월호 생활성서의 <소금항아리> 묵상 글 제목: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농사 경어에 있는 말이라 합니다. 고요히 앉으십시오. 세상이 점점 빨라질수록, 세상이 점점 분주해질수록,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칠수록, 가만히 머물러 싹을 틔우는 씨앗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가 봉독되었는데, 열심히 일하던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에 비해 덜 좋은 몫을 택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가르침 때문인지 성직자 수도자들은 일하는 것보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을 더 좋은 선택으로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봉사자로서 살기 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일하기를 싫어하게 되자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공동체를 만들면서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고 외치며 수도자들이 일하는 것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해야 함을 가르쳤다. 베네딕토 수도 공동체의 수도자들이 들에서 일하게 되자 그 노동의 대가로 얻게 되는 수익이 많아지면서 유럽 경제가 달라졌다는 교회사가들의 평가도 있어 왔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은 참으로 극진했고 그 덕분에 부인의 잉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늘 많은 수도원들이 수도원을 찾는 손님들에게 후하게 대접을 해주는 관례가 있는데 그런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손님 접대 관습에 따른 것이라 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하였다고 칭찬받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여러 사람의 칭찬을 듣는 이는 소수이고, 그런 칭찬을 받기까지 뒤에서 숨어서 도와주는 이들은 수없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축구 경기에서 칭찬은 주로 골을 넣는 선수가 차지하는데 정작 그것이 가능하기까지에는 다른 10명의 선수들의 협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칭찬은 한 사람이 독차지하기 일쑤이다. 오늘 복음 덕분에 노동의 가치보다 말씀의 가치가 교회 공동체 안에 더 돋보이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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