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료

발렌타인 데이와 초콜릿

두돌 0 2,068 2006.02.21 10:37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와 초콜릿

  발렌타인데이는 269년 또는 270년 2월 14일에 순교당한 로마의 성 발렌티노 기념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 2세는 청년들을 군대로 보내기 위해 금혼령을 내리면서, 황제의 허락이 있을 때에만 젊은이들이 결혼할 수 있게 했는데, 발렌티노 신부가 황제 몰래 젊은 남녀를 결혼시켰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참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설에 따르면, 그가 감옥에서 간수의 눈먼 딸을 기도로 고쳐주었는데, 그 때문에 간수의 가족이 개종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황제의 미움을 받아 처형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다른 낭만적 전설이 덧붙여져서, 성인이 그 딸을 사랑하게 되어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사랑하는 당신의 발렌티노로부터” 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은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이라는 현대의 발렌타인 풍습과는 그 맥락이 조금 다르다.

  현대의 발렌타인 풍습은 한 영국 처녀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77년 2월14일 영국의 마거리 부르스라는 시골 처녀가 당대의 풍습을 무릅쓰고 짝사랑하는 젊은이에게 구애의 편지를 보내어 그 덕택에 결혼하게 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이런 기원들이 일본의 제과회사 모리나가가 1958년에 착안한 상업 캠페인 때문에 초콜릿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모리나가 제과에서 ‘이날 하루만이라도 여성이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게 하자’ 는 캠페인을 내놓으면서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고백하라’ 는 말을 끼워넣었는데, 당시에는 크게 호응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와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것이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 들어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렌타인 데이와 연관된 발렌티노는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다. 그리스도교 성인 발렌티노 이전에 2세기 경 로마에서 활동했던 이집트 출신 그리스도교 이단 영지주의(그노시즘) 학파 학자였던 또 한 명의 발렌티노가 있었다. 그의 사상 체계는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세계를 창조주가 아니라 열등한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보고, 구세주 예수의 개입에 의해 인간들이 신적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단적 입장에 그리스도교 성인 발렌티노의 전설이 합쳐져서 중세기의 “발렌타인 클럽”의 <영적 결혼>의 관습이 생겨나게 된다. 이 관습에 따르면, 2월 14일에 클럽 회원인 여성들이 남성들을 선택하게 되며, 선택된 남성은 1년 간 그를 선택해 준 여성을 있는 재주를 다해 섬겨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그는 클럽에서 파문당하게 된다. 그러나 발렌타인 쌍들의 결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교 이단의 공통점은 <자연>의 은총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영지주의자 발렌티노는 인간의 신적 상태로의 상승을 인정한다. 그것은 정통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다. 발렌타인 클럽은 이단 발렌티노에 그리스도교 성인 발렌티노를 덧붙여 자연-사랑-에로스-그리스도교 영성을 결합시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관습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게임에서 여성에게 주도권이 주어져 있는 것은 모든 고대 문화의 특징이었다.

  발렌타인 데이는 겨울의 어둠이 걷히고, 모든 생명력의 근원인 사랑이 움트기 시작하는 봄의 서곡을 알리는 축제이다. 그 축제에서 오랫동안 사랑의 주도권을 빼앗겼던 여신이 남신보다 먼저 등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생명은 여신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 발렌티노도, 그리스도교 성인 발렌티노도, 마거리 부르스도, 모리나가 회사도 이 거대한 순환의 드라마에서 하나씩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성 발렌티노가 참수당했을 때, 새들이 짝을 짓기 시작했다는 전설은 이 축제가 동물이 먼저 알고 준비하는 계절의 순환을 반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게다가 새는 늘 여신의 동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떤 우연이 사랑의 상징으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선택하게 했을까? 사랑은 초콜릿처럼 쓰라립고 달콤하다. 어쩌면 초콜릿의 달콤함은 그 쓴 맛으로 인해 더욱더 미묘한 것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 죽음과 함께 있다는 것을 놀랍게 암시한다. 교황의 무시무시한 체제적인 감성 말살에 맞서, 12세기에, 벌써, 주체의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르네상스적 세계 해석을 예시했던 <트린스탄과 이졸데>의 작가 고트프리트는 “고결한 영혼” 이 사랑을 통해 인지하는 “쓰라린 기쁨”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또는 어쩌면, 초콜릿의 쓰라림은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의 망설임과 두려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대의 두려움은 오로지 달콤할 뿐인 화이트데이의 캔디로 사라져 버릴 것이므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대의 대답 없는 사랑은 그대의 성숙과 함께 남을 것이므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들이 초콜릿의 쓰라림을 달콤함과 더불어 이해하게 되기를. 그들이 사랑의 힘으로 생의 쓰라린 아름다움의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공동체와 종의 운명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기를.
                                                                                                                ▲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한겨레 2006년 2월 17일(금) 세설 란에서 일부 단어 수정하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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